Overview
About the Exhibition
에디트프로젝트는 오는 8월 2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유남권의 개인전 《이름 이전의 것 (Something Before a Name)》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언어나 고정된 명확한 형태로 규정되기 이전, 존재가 공간 속에 남기는 미세한 기운인 '기척'을 화두로 삼는다. 이를 통해 화면 속 과잉된 정보와 정형화된 신호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공간에 은은하게 스며 있는 비언어적 감각 신호를 재인식하는 시선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점점 확인된 것에만 반응하게 된다. 화면에 뜬 것, 누군가 먼저 감지해서 알려준 것. 기척처럼 아직 형태가 없는 것, 배경 속에 스며있는 것은 신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감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것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능력이 아니라 숨어 있는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 같은 색이 배경이 되면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는 습관. ” (글 백승의)
 
동양화와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유남권(b. 1987)은 무형유산 ‘옻칠장’ 박강용 장인에게 사사하였으며, 이후 ‘지태칠기’ 연작을 선보이며 주목받아 왔다. 전통 옻칠은 바탕 재료에 따라 목태(나무), 금태(금속), 도태(도자), 지태(종이)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닥종이 위에 옻을 입히는 지태칠은 종이의 유연한 섬유질과 옻이 결합해 깊이 있는 질감을 형성한다. 작가는 여기에 동양화의 반수(칠)와 배접(포개어 붙임)의 원리를 응용함으로써 옻칠 표면에 현대적 조형미와 레이어의 깊이를 더해왔다. 
 
유남권은 그간 지태칠기 기물 연작과 옻칠의 결을 담아낸 평면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나아가 2023년부터는 작품과 공간의 관계로 작업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개별 기물이나 단일 화면을 넘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조형적 장으로 삼아 그 안에 감도는 기운을 직접 조율한다. 
 
전시장은 두 개의 독립된 공간 구조로 연출되어 기척이 지닌 두 가지 속성인 ‘드러냄’과 ‘숨김’의 상태를 가시화한다. 먼저 입구에서 처음 마주하는 공간은 정갈한 백색 벽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원통형 지태칠 조형과 바닥의 검정 옻칠 패널이 선명한 명암 대비를 이루며 존재가 명징하게 인지되는 '드러냄'의 기척을 구현한다. 반면 안쪽 공간에서는 벽면 사방이 적갈색과 검정 옻칠로 덮여 있어 작품이 배경 자체로 스며들어, 주의 깊은 관찰 없이는 지나치기 쉬운 ‘숨김’의 기척을 침묵 속에서 드러낸다. 이처럼 밝음과 어둠, 드러냄과 숨김으로 대비되는 공간 속에서 관람객은 물성과 공간, 그리고 존재의 기척이 자아내는 고요한 긴장감을 대면하게 된다. 유남권은 시간의 노동이 축적된 지태칠의 표면을 통해 미세한 빛의 반사와 회화적 결을 끌어내며 전통 매체에 대한 이해와 현대적 재해석이 접목된 정제된 조형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About the Artist
유남권 (b. 1987)은 한국 옻칠과 동양화적 회화 기법을 매개로 공예와 동시대 시각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2년 재단법인 예올과 샤넬(CHANEL)이 공동 주관하는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되었다. 상해 문인공간(2026, 상해), 경남도립미술관(2025, 창원), 주스웨덴 한국문화원(2025, 스톡홀름), 우란문화재단(2025, 서울), 밀라노 한국공예전(2024, 밀라노), 서울공예박물관(2024, 서울), 경기도박물관(2024, 경기도), 신라호텔&조현화랑(2023, 서울), 선병국 가옥 (2022, 충북), 예올x샤넬 프로젝트(2022, 서울) 등 주요 기관 전시 및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또한, 2026년 9월 주스페인 한국문화원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이름 이전의 것 (Something Before a Name)
글 백승의
기척. 존재 자체가 아니라 존재가 남기는 인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것을 "사람이 있거나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하는 소리나 기운"이라고 정의한다. 문이 닫혀 있어도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고, 소리가 들리기 전에 몸이 먼저 아는, 아직 이름을 갖지 않은 감각. 기척은 경계를 묻지 않는다. 형태보다 먼저, 벽보다 먼저 도달한다. 그런데 기척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같은 존재도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감지되기도 하고 그냥 지나쳐지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그 감각이 어떻게 드러나고 어떻게 숨는지를 두 공간에 걸쳐 묻는다. 유남권은 오래전부터 옻을 써왔지만 옻을 시간이나 인내의 상징으로 다루지 않는다. 수십 겹을 쌓아 올리는 과정보다 그 결과가 공간 안에서 어떤 기운을 내는가에 집중한다. 옻은 그에게 공간을 점유하는 매체다. 칠해진 표면이 빛을 받으면 안쪽에서부터 에너지가 피어오른다. 조형이 놓이는 자리, 벽이 덮이는 방식. 그 모든 선택이 공간 안의 기운을 어떻게 드러내고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다. 에디트프로젝트의 두 방에서 기척의 두 면모인 드러냄과 숨김을 각각 담았다.
 
첫 번째 공간에 들어서면 브라운 빛의 조형이 보인다. 흰 벽 위에서 사선으로 놓인 원통형 조형들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선의 방향이 달라지고 한 발 옮길 때마다 형체의 각도와 무게가 조금씩 바뀐다. 흰 벽과 브라운의 대비는 선명하다. 기척이 드러난다는 것은 다가서기 전에 이미 느껴지는 것이다. 바닥을 보면 달라진다. 검정 옻칠 패널 두 장이 바닥에 조용히 놓여 있다. 눈높이의 조형들 사이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를 향하지만 바닥의 검정은 다른 방식으로 기척을 내고 있다. 기척은 한 방향에서만 오지 않는다. 공간 끝, 문 사이로 들어선다. 그 순간 달라진다. 벽 전체가 어둡다. 브라운 옻칠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사방을 덮고 있다. 공간 안에 놓인 조형들도 같은 빛을 띤다. 어디가 벽이고 어디가 작품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첫 번째 공간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던 브라운이 여기서는 배경 자체가 되어 있다. 달라진 것은 배경뿐이다. 기척을 숨긴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배경과 하나가 되어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 상태다. 느끼려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 
 
두 공간을 걷는 것은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바닥에 누운 검정을, 배경 속에 스민 조형을, 벽을 넘어온 선을 하나씩 다시 감지하는 과정. 그 감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쓰지 않아 무뎌진 것임을 안다. 우리는 점점 확인된 것에만 반응하게 된다. 화면에 뜬 것, 누군가 먼저 감지해서 알려준 것. 기척처럼 아직 형태가 없는 것, 배경 속에 스며있는 것은 신호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감지되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것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능력이 아니라 숨어 있는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 같은 색이 배경이 되면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는 습관. 
 
이번 전시 제목 《이름 이전의 것》은 그 감각에서 비롯했다. 기척은 형태가 오기 전에 먼저 도달하고 아직 언어가 닿지 않은 자리에 있다. 확실하게 명명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기운의 상태. 이름이 붙는 순간 고정되는 것들과 달리 기척은 누가 감지하느냐에 따라,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끝내 갖지 않을 수도 있는 열린 상태 그대로의 속성을 떠올리며 제목에 담아보려 했다. 무심코 흘려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인식하는 순간, 같은 공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전시는 그 감각을 다시 켜는 일이다. 기척을 먼저 느끼고 내 주변의 장면을 새롭게 읽어내는 그 감각에 집중해본다. 
Installation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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